
거리를 걷다 보면 쇼윈도에서 보는 옷보다 더 눈에 띄는 순간들이 있다.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사람의 후줄근한 듯 자연스러운 자켓, 낡은 운동화에 매치한 반짝이는 액세서리, 혹은 로고가 없는 티셔츠가 풍기는 묘한 자신감. 그 모습들이 모여 ‘스트리트’라는 단어를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살아 있는 감각으로 만든다.
처음 이런 장면을 유심히 보게 된 건, 매끈하게 꾸며진 브랜드 광고보다도 거리에서 마주친 옷차림이 훨씬 강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집 앞 슈퍼에 가는 평범한 차림이었을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브랜드가 흉내 내지 못하는 태도와 이야기가 있었다. 패션이 옷 그 자체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람과 환경, 분위기 속에서 완성된다는 걸 실감한 순간이었다.
이후로는 옷을 살 때도 단순히 재질이나 핏만 보지 않는다. 이 옷을 입고 골목길을 걸었을 때 어떤 리듬이 만들어질지, 불빛 아래에서 어떤 질감으로 보일지, 그 안에 나만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지를 먼저 상상한다. 그 상상이야말로 패션을 일상과 연결하는 가장 흥미로운 과정이었다.
친구와의 대화에서도 비슷한 깨달음을 얻곤 한다. ‘요즘은 어떤 옷을 입어야 멋있어 보이냐’는 질문 대신, ‘네가 진짜 편하게 느끼는 스타일이 뭔데?’라는 대화가 더 설득력을 갖는다. 스트리트 감성의 옷은 결국 자신이 선택한 삶의 태도를 드러내는 도구일 뿐이다. 브랜드 로고가 크든 작든, 신상인지 빈티지인지보다 중요한 건 그 안에서 드러나는 자연스러움이다.
패션은 늘 화려한 무대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골목길의 벽화 옆, 오래된 횡단보도 위, 소음 가득한 버스 정류장에서도 충분히 빛을 발한다. 그리고 그 빛은 결국 옷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옷을 입은 사람의 몸짓과 시선, 그리고 그 순간의 공기와 뒤섞여 완성된다.
나는 앞으로도 거리에서, 일상의 작은 틈에서 이런 순간들을 발견하고 기록하려 한다. 스트리트 감성의 실과 옷은 그렇게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며 새로운 이야기를 남긴다. 그것이 바로 내가 패션을 탐구하는 이유이고, 옷을 바라보는 가장 솔직한 방식이다.
– 심재훈 에디터